Food in the Soup

EP.2 포도밭 그 달팽이와 와인 마신 소고기

싸라리 2021. 2. 17. 17:12

에스까르고 (Escargot)와 뵈프 부르귀뇽(Boeuf ourguignon)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나의 집은 sweet home 이었다. 행복한 가정 속에서 자라 스위트홈이었기도 했고, 우리 집 정원에 과실나무가 많아 4계절 별로 달콤한 과일을 먹을 수 있어서 스윗홈이다. 나의 아버지의 취미는 가드닝(Gardening)이다.  텃밭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면서 아버지는 집안 곳곳에 과일나무를 심고 가꾸어 열매를 맺으면 나에게 그 열매를 따주곤 했다.  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에는 나무에 과일이 열리고 익어가는 과정 속에 색이 변하는 모습들을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언제 따서 먹을 수 있는지 하루에도 여러 번씩 엄마에게 물어보고, 시퍼런 과일을 몰래 따먹다가 떫고 신맛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봄에 먹을 수 있는 딸기 넝쿨부터, 여름 과일인 수박,앵두,복숭아, 가을에 가장 맛있는 포도와 밤, 초겨울 먹을 수 있는 나무가 있었다. 나는 꼬꼬마 시절에 엄마 몰래 흔적 없이 한, 두 알 따먹을 수 있는 포도를 가장 좋아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과일들이 비 맞아 떨어질까 내심 초사 하며 비가 그친 후 득달같이 달려가 살펴보곤 했다. 그런데 비가 그치면 늘 언제나 내가 찜콩 해 두었던 과일에 달팽이들이 있었다. 나뭇잎에 거꾸로 매달려 있기도 하고, 과일에 붙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내 과일을 먹어버리는건 아닌지 걱정돼 나무에 붙어 있는 달팽이를 모조리 잡았었다. 잡은 달팽이는 종이박스에 넣고 삐죽 솟아오르는 눈을 손으로 콕!하고 누르고 다시 솟아오르면 콕! 콕! 눌러가며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다 엄마한테 혼이나고 엄마는 내가 힘들게 잡은 달팽이들을 다시 젖은 땅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나에게 달팽이는 그렇게 내 과일을 훔쳐 먹는 도둑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TV에서 프랑스인들이 달팽이를 먹는 다는 다큐 프로그램을 보았다. 달팽이를 먹는다니 신기했다. 연체동물이라서 조금 징그러운 느낌도 있다. 그 달팽이가 입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니 갑자기 해리포터가 나에게 잘못된 마법을 부린 리는 듯한 상상을 하게 된다. 

 

스스로 돈을 벌기시작하면서는 이곳저곳 해외로 여행을 다녔다.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알아가고 그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여행 중 가장 큰 즐거움이다. 기후나 토양에 따라 그 나라에서만 자라는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맛보거나, 한국에서는 먹지 않는 재료가 특정 국가에서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유럽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유럽이 워낙 넓어 한번에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유럽의 시작은 서유럽인만큼 파리의 에펠탑은 꼭 보고 싶은 광경 중 하나였다.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용했고 에펠탑 2층에서 360도로 파리 시내 전경을 본 후 식당으로 이동했다. 

어릴 적 내 포도를 스틸하려고 했었던 달팽이. 에스카르고가 식사 메뉴였다. 에스카르고는 메인 요리는 아니다. 식전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로 보통 메인 요리 전에 가볍게 먹는다. 과연 달팽이를 어떤 식으로 요리해 먹을지 궁금하면서도 내 머릿속에 달팽이의 눈이 자꾸 아른거렸다. 요리가 나왔다. 내가 상상했던 작고 조그만 달팽이가 아니었다. 골뱅이나 작은 소라 정도 크기로 에스카르고 전용 그릇에 6개가 옹기종기 담겨 나왔다. 

물론 식용 달팽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크기가 커서 달팽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요리는 달팽이를 삶은 후에 파슬리, 샬롯, 마늘, 소금, 버터 양념을 넣은 후 오븐에 굽는다. 오븐에 구워서 뜨겁기 때문에  달팽이 전용 집게를 함께 준다.  왼손을 이용하여 집게로 달팽이 쉘을 단단히 잡고 오른손으로 포크를 이용하여 달팽이 살을 콕 찍어 돌돌 돌려가면서 빼내면 쏙~하고 쉽게 뺄 수 있다. 골뱅이나 소라를 먹는 방식과 같아 골뱅이라고 생각하며 한입 먹었다. 모양도 식감도 너무 비슷한데 골뱅이보다는 쫄깃함이 덜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버터향이 나서 고소하고 맛이 좋다. 

알맹이를 빼먹고 달팽이 쉘을 거꾸로 엎어 놓으면 껍질 안에 고여 있는 버터양념이 흘러나온다. 남아 있는 소스를 바게트 빵에 찍어 먹으면 풍미가 있고 맛있다.

전채요리를 먹고 나니, 레드 와인에 소고기 덩어리를 넣은 후 양파, 당근, 버섯을 넣고 푹 끓여 국물을 졸인 스튜 같은 뵈프 부르귀뇽이 나왔다. 오래 조리해서 고기육질이 굉장히 부드러웠다. 고기가 결대로 찢어지는 걸 보니 우둔살 같았다. 아무래도 와인과 함께 오랫동안 조리하기 때문에 지방질이 없는 부위가 제격인것 같다.  이 요리는 브로고 뉴 지방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식재료인 와인과 소고기를 이용하여 농민 가정에서 소박하게 먹는 식사가 기원으로 현재는 프랑스의 가정식이 되었다. 매쉬 포테이토 또는 스팀 포테이토를 곁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튜라고 하기엔 국물을 떠먹지 않아 한국 음식과 비교하자면 갈비찜요리와 비슷하다. 뵈프 부르귀뇽은 와인에 푹 졸이고, 갈비찜은 간장 베이스 국물에 푹 졸이기 때문에 조리법인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요리에도 사용하니 와인의 나라 음식답다.

나의 어릴적 포도와 얽힌 추억이 프랑스에 오니 맛있는 음식 재료가 되었다. 나에게 프랑스는 추억 맛집이 되었다. 

 


 바게트 빵과 함께 먹으면 좋다.